홋카이도립 근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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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의 미술

현재의 홋카이도가 ‘홋카이도’라 이름이 지어진 것은 1869년의 일이다. 그 후의 홋카이도에서는 일본 열도의 북단에 자리하며 북아시아와 접하고 있다는 지리적 조건과 혼슈 외로부터의 이주와 개척이라는 사회적 전환을 중심으로 기인한 특징적인 인간의 발자취가 전개되었다.
우리 미술관은 지역의 근대미술관으로서 메이지 이후의 홋카이도 출신 작가, 거주 작가, 홋카이도에 활동의 거점을 둔 작가들에 의한 미술을 대상으로 수집해왔다. 장르는 회화·조각·판화 등의 소위 순수 미술부터 공예·디자인·사진에 이른다.

지금까지의 수집 활동으로 특히 순수 미술과 도자기(에가미 히사유키 컬렉션) 분야에서는 메이지 시대부터 쇼와 시대에 걸친 창작 활동에 대해 일정 수준까지 계통적·망라적으로 소개 가능한 컬렉션을 형성할 수 있었다. 컬렉션에는 또한 '정화(精華)'라 해도 무방한 매력이 풍부한 작품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앞으로는 헤이세이 시대 이후의 미술까지도 대상으로 수집 활동을 지속함은 물론, 지금까지 수집 대상으로 포함하지 않은 사회적인 평가가 크게 변한 근접한 여러 장르에 관한 검토도 시야에 들어올 것이다.

우리 미술관은 개관 이래 활동 전반의 관점으로서 ‘지역성과 국제성’을 내걸어 왔다. ‘과’로 연결한 두 개의 말의 뜻은 결코 확연히 구분되지 않는다. 홋카이도라는 지역의 미술이라 해도 국제적인 조류가 깊게 스미고 있다. 우리 미술관이 일찍이 북유럽이나 캐나다 등 북방권의 미술을 소개하는 활동을 해온 것은 홋카이도를 같은 권역의 한 지역으로 인식하고 국제적인 시야에서 지역성을 검증한다는 목적이 있었다. 지역성과 국제성은 서로 얽힌 요소이며 수집이라는 미술 작품의 가치 판단을 요점으로 하는 활동에서는 관점이라고 말하기보다 ‘지표’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가치 판단이라는 의미에서 수집 또한 비평 행위이다. 미국의 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말을 빌리자면 예술의 주류를 판별하는 것이 비평의 역할이 될 것이다. 근대미술에서 국제성의 주류란 이전에는 서양의 모더니즘이었으나 그것만으로는 구분할 수 없게 된 지 오래다. 한편으로 지역의 고유성의 과도한 허구나 사실을 남김없이 열거하는 자세(발터 벤야민이 말하는 연대기 작가)는 퀄리티의 판단을 요점으로 하는 수집 활동에 있어 큰 함정이 된다. 지역의 미술을 대상으로 장래를 지향한 혹은 미래를 선구한 컬렉션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지역성과 국제성이라는 서로 얽힌 지표의 구체적인 의미를 세계의 오늘날을 대비해 미래를 그리면서 끊임없이 갱신하고 미술관의 ‘눈’을 끊임없이 연마하는 그런 마음가짐이 중요할 것이다.

2022년 3월말 현재, ‘홋카이도 미술’ 수장 작품수: 2,910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