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자화상
●1921년
●290×193mm
1921년, 미기시 고타로가 삿포로 제1 중학교(현 삿포로 미나미 고등학교) 졸업 후 화가를 꿈꾸며 상경하기 직전, 17살 때에 그린 자화상이다. 뒤돌아본 모습으로 이쪽을 흘겨보는 겁 없는 표정. 화가로서 자립하려고 하는 청년 미기시의 강한 기백과 자부심을 먹과 강력한 붓 선으로 모조리 표현했다. 평생 수많은 인물상을 그린 미기시는 자화상은 거의 남기지 않았다. 이 작품은 화가로서의 출발점에서 자신의 각오를 확고히 하기 위해 미기시의 정신을 그려낸 자화상이라 하여도 무방하다.
레몬을 들고 있는 소녀
●1923년
●527×453mm
●슌요카이 제1회전
화가를 목표로 삼은 미기시 20살 때 작품. 어려운 형편 때문에 캔버스를 구매할 수 없던 미기시는 이 작품을 골판지에 그렸다. 미기시는 리얼한 소녀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색면 조합으로 인물을 그리려고 시도했다. 1923년에 탄생한 미술 단체 슌요카이전 전람회에 출품해 입선. 미기시의 데뷔작이 되었다.
어릿광대 배우
●1932년
●2222×1,672mm
●독립 미술협회 제2회전
미기시가 그리는 어릿광대의 대부분은 혼자서 조용하게 사색에 잠긴 모습을 담아내고 있으나 이 작품에서는 드물게 연기 중 모습이 그려졌다. 줄타기로 위태롭게 균형을 잡는 어릿광대는 거의 희화적으로 그려진 관객들의 주목을 일신에 모으고 있다.
유두
●1932년
●1,066×497mm
●독립 미술협회 제3회전
제목은 유두이지만 이른바 나부상의 이미지와는 크게 동떨어진 모습은 괴기하고 비현실적이다. 무질서한 긁힘 선이 난무한 작품의 그림 수법은 초현실주의의 오토마티즘(무의식적으로 선을 그리는 수법)을 연상하게 한다. 이즈음에 미기시는 유럽의 전위적인 표현을 보고 충격을 받고 실험적인 작품 제작에 빠져들고 있었다.
꽃
●1933년
●534×457mm
●독립 미술협회 제3회전
흰색 바탕 위에 검은색을 덧칠한 후 긁어서 흰 선을 화면에 표현했다. 스크래치 수법은 아이들과의 놀이 중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감각이 향하는 대로 긁혀진 소용돌이무늬의 선이 모노크롬 가운데 화려한 꽃을 빚어내고 있다.
형과 그의 장녀
●1924년
●660×510mm
1924년에 미술 단체 슌요카이 전람회에 출품해 1위(슌요카이상)를 수상한 작품. 당시 신문에서 미기시는 ‘쌀을 배달하는 일을 하면서 그림을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크게 보도되었다. 아버지가 다른 이부 형, 소설가 시모자와 칸과 그의 장녀가 모델.
나는 나비
●1932년경
●335×249mm
다채로운 색감의 나비들이 핀으로 고정되어 선명한 그림자를 떨어뜨린다. 오른쪽 위편의 한 마리가 핀을 뿌리치고 날아가는 순간을 그렸다. 마치 나비 표본 상자 같지만, 나비들은 미기시의 창작이지 실존하지 않는다.
금속 파이프의 액자는 미기시의 오리지널 디자인.
오케스트라
●1933년
●893×1,146mm
●독립 미술협회 제3회전
검은색 바탕 위에 흰색 물감을 덧칠한 후 다 마르기 전에 날카로운 도구로 긁어 지휘봉을 치켜드는 지휘자, 첼로 독주자,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는 단원들을 그렸다. 바탕색의 농담과 약동하는 선이 어우러져 악곡의 클라이맥스를 상기시킨다.
소녀의 목
●1932년경
●457×338mm
●독립전 제5회전
미기시 고타로가 그려낸 여성상은 실로 신비한 매력을 품고 있다. 작품들은 모델을 앞에 두고 그린 그림이 아닌 것도 있고 또 모델이 있었을 경우도 모델과 닮게 그렸다는 평을 오히려 미기시는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미기시가 그리고 싶었던 것은 결코 외모를 우선시한 그림이 아닌 여성으로부터 그가 감지한 일종의 정서와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붉은 옷의 소녀
●1932년
●653×530mm
미기시의 친구 딸이 모델이다. 그 소녀에게는 미기시의 얼굴이 으스스하게 보여 처음엔 모델이 되는 것을 거절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빠진 미기시의 이빨을 치료한다는 조건으로 소녀는 간신히 모델을 맡았다. 소녀의 불안한 표정은 그것 때문일 것이다.
한가로운 조개
●1934년
●509×1,074mm
●독립 미술협회 제4회전
모래사장 위에 긴 그림자를 떨어뜨린 큼직한 거거조개가 그려져 있다. 햇빛이 기운 모래사장의 정적 속에서 느긋하게 흐르는 시간을 상상하게 하면서도 어딘가 허무감을 감돌게 한다. 이 작품이 팔린 수입으로 미기시는 세쓰코 부인과 함께 ‘패각 여행‘이라 칭해 교토와 나라 지역으로 생애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